적립기에는 주식 비중을 높게 가져가도 시간이 회복을 도와줍니다. 그러나 은퇴가 가까워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이제는 자산을 빼 써야 하는 입장이라, 큰 하락이 곧바로 생활에 타격을 줍니다. 그래서 등장하는 개념이 채권 같은 안전자산의 비중과 그 비중을 시간에 따라 바꾸는 글라이드패스입니다.
채권을 담는 이유는 더 큰 수익이 아니라 변동성 완충입니다. 주식이 급락하는 국면에서 상대적으로 덜 흔들리는 자산이 있으면, 하락장에 주식을 헐값에 팔지 않고 그 안전자산에서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은퇴 초반 폭락이 자산 수명을 갉아먹는 '수익률 순서 위험'을 누그러뜨립니다. 대신 강세장에서는 주식만 들고 있을 때보다 수익이 낮아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대가입니다.
글라이드패스는 은퇴가 가까워질수록 주식을 줄이고 안전자산을 늘리는 '경로'입니다. 타깃데이트펀드(TDF)가 바로 이 원리로, 은퇴 예정 연도에 맞춰 자동으로 비중을 조정합니다. 과거 어림법으로는 '100 − 나이'(또는 110·120 − 나이)를 주식 비중으로 삼았습니다. 예를 들어 50세면 주식 50~70% 식입니다. 다만 기대수명이 길어지면서 너무 일찍 보수적으로 가면 오히려 자산이 인플레이션에 못 버틸 수 있다는 반론도 큽니다. 그래서 이 숫자는 '출발점'일 뿐, 정답이 아닙니다.
최근 주목받는 절충안이 본드 텐트(bond tent)입니다. 가장 취약한 구간인 은퇴 직전 몇 년과 직후 몇 년에만 채권 비중을 일시적으로 두껍게 쌓아 올렸다가, 위기 구간을 지나면 다시 주식 비중을 서서히 높이는 방식입니다. 텐트처럼 가운데가 봉긋해서 붙은 이름으로, 은퇴 초기 폭락의 충격을 집중적으로 막으면서 장기적으로는 성장 자산의 비중을 회복해 인플레이션 위험에도 대응하려는 전략입니다.
정답 비중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핵심은 '내가 견딜 수 있는 최대 하락 폭'과 '은퇴까지 남은 기간'을 기준으로 비중을 정하고, 글라이드패스로 시점에 맞게 조정하는 것입니다.
파이어맵에서 기대수익률을 보수적으로 바꿔보며, 안전자산 비중을 높였을 때 자산 수명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직접 시뮬레이션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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